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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이사람] 교수에서 CEO로 한무경 효림산업(주) 대표
    한무경 대표(현 국회의원).사진 2008 월간경산사랑 ◆노사 무한신뢰가 고속성장의 비결 자동차 부품하면 왠지 남성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관련 기업의 CEO도 남성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수 여성 인력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은 자동차 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제 10회 '산업기술혁신대상'에서 기계분야 우봉금상을 수상한 효림산업의 한무경 대표는 자동차 부품 산업에 남긴 뚜렷한 업적으로 주목받는 여성 CEO다. 전국에 세 개의 공장과 충남 강진 등에 별도 계열사를 두고 있는 효림산업 한무경 대표의 일상은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각 공장과 연구소를 종횡무진 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이렇게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녀의 복장은 항상 단정한 작업복차림. 남자들도 일하기 힘들어하는 제조업에서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여성 CEO 한무경 대표의 성공비결을 들어보자. 원래 문헌정보학 박사였던 한무경 대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었다. 부친의 권유가 계기가 되어 1998년 효림산업을 설립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일단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매달렸다. 그 결과 창업 이듬해인 1999년 1백 8억원의 매출을 올린 후 한번도 매출이 하양곡선을 그린 적이 없다. 이런 그녀를 두고 주위에서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했다고 놀라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맨 처음 회사에 출근했을 때 딴 세상에 온 느낌이었어요. 자동차산업이란 것이 용어자체가 영어, 일본어 그리고 영어와 일본어가 뒤섞인 용어까지 일상적으로 되다보니 저 같은 사람은 직원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모든 걸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직원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우선 그걸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나중에 영한, 일한사전을 찾아가면서 하나씩 익혀나갔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자동차에 대한 '감'을 서서히 잡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그 결과 한 대표에게는 자동차와 그 부품에 대한 일목요연한 대학 노트3권 분량의 '자동차 사전'이 남겨지게 되었다. 이제 한 대표는 자동차에 대해 박사라고 할 정도로 어디서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 대표가 받은 제 10회 '산업기술혁신대상'은 '대형. 고급승용차 프로펠러 샤프트(추진축)'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이 부품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 수입 고급차에 쓰이던 후륜구동방식을 널리 보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프로펠러 샤프트는 엔진에서 발생하는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핵심부품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형. 고급승용차 대부분은 승차감과 정숙성이 뛰어난 후륜구동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대형 고급차가 세계 평균에 비해 2배 이상의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우리나라도 점점 이러한 방식이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 효림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후륜구동방식의 프로펠러 샤프트를 개발, 수입대체효과를 실현한 것은 큰 의미를 있다고 평가되었다. 한 대표는 그 당시 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독일에서 수입한 프로펠러 샤프트를 수백 번이나 분해, 조립하며 벤치마킹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오기와 자존심 때문에라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효림이 개발한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었다. 기존 제품은 고강성을 적용했지만 지나치게 무겁고 NVH성능이나 차량의 승차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효림이 개발한 프로펠러 샤프트는 고강성 소재 사용으로 실내 승객의 안전성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기존 제품 대비 약 30%이상의 경량화를 달성했다. 이 개발의 성공으로 인한 수입대체효과는 연간 1백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를 통해 국내 중소기업이 해외 대형. 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글로벌 소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도 중요한 성과이다. 효림의 전자사업부에서 생산하고 있는 AVN은 차량용 DVD를 포함해 TV, 네비게이션, 라디오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특히 네비게이션 기능은 항공기 특수 항법 장치를 이용한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세계 구석구석 어디든 찾아갈 수 있도록 제작됐다. 생산된 모든 제품이 수출되고 있는 효림의 AVN은 현재 미국에 60%, 유럽에 20%, 나ㅏ머지 지역에 20%씩 수출돼 제품생산 7개월 만에 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놀라운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한 대표는 제조업체, 특히 기계를 만지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는 소문을 취임하자마자 알게 됐다. 그래서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살려 직원들에게 귀를 열고 모든 것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통근버스를 운영했고, 직장 내 편의시설을 늘이고 구내식당과 기숙사 등을 완비했다. 더불어 회사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부서를 아예 없애고, 회계업무는 회계법인에 맡겼다. "저는 우리 회사를 가족적인 분위기가 넘쳐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회사의 규모가 작은 만큼 구성원들 간에 인간적인 배려를 중시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부터 나서서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정이나 회사를 방문하면 화장실을 유심히 살핍니다. 화장실이 깨끗하면 그 가정이나 회사는 잘되고 있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기 때문이죠. 기본에 충실해야 만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저의 삶의 철학입니다."는 한 대표는 이 부분을 직원들에게 수시로 당부하기도 한다. "아직 이 사회가 남성 중심이다 보니 은행에 가면 저에 대한 질문보다 오히려 '남편은 무엇을 하느냐'고 꼬치꼬치 물어보는 게 현실입니다. 저와 저의 기업보다 남편의 직업이 더 중요한 것이 우리나라 여성기업이 처한 안타까운 처지입니다."고 한 대표는 이 사회가 여성을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대표는 사람을 한 번 고용하면 믿고 따른다. CEO가 직원들을 신뢰할 때 직원들의 능력이 120%발휘된다고 믿으며 회사 설립 초기부터 자동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자원의 충실화라고 믿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회사와 노조가 하나의 목표를 갖고 매진해 효림은 7년 연속 무분규를 실현하며 노사간에 확고한 신뢰기반을 쌓아가고 있다. "저희가 중소기업이다 보니 인력수급문제가 가장 튼 고민거리입니다. 대부분의 인력이 경기도까지만 몰리고 있고 그 외 지역은 사람구하기가 별 따기와 같아요. 숙련공을 필요로 하는 저희로서도 인력난 대문에 고생을 하고 있어요. 다행히 저희는 회사 설립부터 지금까지 큰 인력 변동 없이 가족처럼 하나로 움직이고 있어 직원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고 고마움과 동시에 직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한 대표는 직원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주고 싶은 마음에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놔 영화 단체관람 등의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효림은 매년 4월 '장애인의 날'에 즈음하여 전직원이 영천에 있는 '나사렛 마을', 경산 진량의 '천사들의 집', '안락원' 등 3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생활실과 주변 청소하기, 자급자족을 위한 밭에서 잡초 기, 땔감 만들기, 설거지, 부식 손질하기, 퇴비 정리, 생활인들과 놀아주기 등 온갖 잡일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봉사에 임한다. 한 대표는 "여러 부류의 근로자들이 일년에 단 하루지만 이 같은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도움을 줄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자신에게 감사하면서 생활하는 기회를 주고 싶어 회사 차원의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고 의의를 말했다. 현재 ‘여성경제인협회 대구경북지부 이사’와 ‘경산공회의소 상임위원’, ‘경산시 체육회 부회장’ 등을 맡아 지역발전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오는 5월 개최될 '도민체전'을 앞두고 경산시 체육회부회장으로서 한 대표는 "먼저 경산 시민의 마음을 한 곳에 모아야 합니다. 타 지역에 비해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지역 색을 버리고 경산 시민 전체가 조금 더 친절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숙박 시설도 정비해야합니다. 독일, 일본의 경우에는 건물 외부나 겉치레보다 침구류나 내부에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우리도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쪽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며 성공적인 도민체전을 위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작년 미국과 일본 시장을 개척하면서 올해는 유럽도 개척해 나갈 것이라는 한 대표는 "직원들에게 '2009, 2010년 2번의 크리스마스를 슬기롭게 보내자.'고 수시로 말합니다. 그러면 2011년에는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춘 효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고 비전을 제시한다. 효림산업의 모토는 '100년 살아남기'이다. 100년 이상 지속가능한 장수기업으로 만들어 직원들의 자녀들도 효림에서 일 할 수 있는 좋은 경영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다는 한무경 대표. 국내에 안주하는 기업이 아닌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하는 그 날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더욱 더 기술개발에 모든 힘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한 대표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걸고 매달려, 누구나 탐내던 값진 열매를 따내고야 만 자랑스러운 기업인이다. [출처] 2008 '월간 경산사랑' 이 기사는 2008년 월간경산사랑에 소개 된 내용입니다. 월간경산사랑은 웹플러스뉴스의 전신입니다. 인터넷 웹플러스뉴스는 [인물&이사람] 코너를 새롭게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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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1
  • [인물&이사람]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김재권 변호사.
    김재권 변호사. 사진 2008 월간경산사랑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김재권 변호사. 그의 고향은 경산 삼성산 자락이다. 원효,일연,설총 삼성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으니 그 스스로 영광이요, 자부심이리라.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선생님’이 꿈이었던 그는 고 3 여름방학 동안 절에서 공부를 하고 온 친구로부터 ‘고시생’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에 홀려 서점으로 달려가 고시잡지를 사보게 되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 고시잡지를 사 본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것이다. “잡지에 있는 글들은 온통 어려운 한자투성이였고, 합격기를 읽어봐도 겨우 반쯤 이해되는 정도였지만, 어렴풋하게나마 합격만 하면 대단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느껴졌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판사나 검사가 되면 어떤지에 대해 물어보니 다들 ‘잘은 모르지만 대단한 것’이라더군요. 그래서 무엇에 홀린 것처럼 진로를 결정해버렸습니다. ‘사회정의의 실현’ 같은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대단한 것이라고 하는 말에 혹해 느닷없이 도전의식이 불타오른 것이죠. 그렇게 결심이 서자 지금까지 꿈꿔온 선생님이 하찮아 보이고, 정말 어려운 시험이라는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 자만심으로 인한 방황과 질병 등으로 7전 8기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 서른넷의 나이에 겨우 합격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매어 못 쓴다’는 속담이 실감나더군요. 특별한 사명감이나 목표도 없이 섣불리 결정하고 행동한 결과, 지름길을 두고 멀리멀리 둘러온 거죠.” ◆내게 특별한 기억! 비록 먼 길을 둘러 왔지만, 그렇기에 법조인으로서 그의 책임감과 자부심은 남다르다. 최근에는 법조인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법조인에 대한 사회의 기대와 믿음은 크다. 법조인으로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봉사를 할 수 있다고, 힘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는 그는, 그 동안 (사)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집행위원장, 아파트사랑시민연대 공동대표로 각각 4~5년여 활동해오며 지역의 아파트 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2년 전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 ‘김재권 변호사의 부동산 법률상담실’을 운영하면서 천여 건의 무료법률 상담을 해오고 있다. 또 모교 후배들을 위해 고시공부를 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12년째 지원해오고 있는데, 그동안 25명의 합격자가 배출되었고, 1기생인 최유신 변호사는 그와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있어 그에겐 남다른 보람이라고. “소송과 관련해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어요. 할머니 한 분이 평생의 한을 풀어달라고 찾아오셨는데, 사연인 즉, 남편이 6.25사변 때 치열했던 포항지구 전투 중, 민간인으로서 수류탄 등의 수거작업에 동원되었다가 폭사하는 바람에 20대 초에 과부가 되어 세 아이를 키우느라 온갖 고생을 다해 왔는데 국가에서는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군인이나 경찰관이 아닌 민간인 노무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인지 보훈청에서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죠. 할머니의 사정이 너무 딱해 무료로 변론을 하기로 했지만 승소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1심판결을 앞 둔 어느 날, 할머니는 ‘꿈에 영감이 생생히 보였는데, 김재권 변호사가 꼭 한을 풀어 줄 것이다’고 했다며 도리어 격려를 해 주셨는데, 신기하게도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고, 마침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판결을 받아내 할머니는 매달 상당액의 보상금을 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8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보은을 하고 계세요. 판결이 나자, 지역 TV방송국기자에게 연락해 난생 처음 인터뷰를 하게 해 주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홍보해 주십니다. 그리고 80이 넘으신 지금까지도 매년 한두 번씩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참기름 두 병과 떡이 가득 든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십니다. 이제 그만 오셔도 된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영감 보듯이 오는데….’라며 막무가내세요.” ◆전문성으로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해야! 김재권 변호사는 국민들에게 질 높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로스쿨 도입, 법조인들의 의식제고 등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화라고 강조했다. 법조인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전문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말이다. 부동산 분야, 특히 건설, 재건축 관련된 소송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실무를 전혀 몰라 답답했다는 하소연을 종종 듣게 된다며, 이런 것이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과거 법조인이 소수였던 시절에는 각자의 몫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었지만, 매년 1천명씩 뽑는 현실은 경쟁이 치열하므로, 자신의 전문영역을 확보하고 개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2000년부터 대구 최초로 8개 전문분야를 ONE-STOP SERVICE하는 법무법인을 시도했는데, 당시 부동산경매팀을 맡으면서 경매법정이란 곳을 처음으로 가보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까지 1천여 건의 입찰과 명도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는 명실상부한 부동산전문변호사로 자리매김 했다. 대구대 대학원에서 부동산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경북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박사과정 5학기에 재학 중(도시설계 전공)인 그는, 미국, 캐나다, 일본 등지로 부동산개발현장에 답사여행도 다녔고, 부동산강좌를 듣기 위해 서울을 몇 개월씩 오가기도 했다. “10억 원의 펀드를 모아 부동산투자개발회사를 운영하던 중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었다가 투자금을 몽땅 날린 일도 있고, 자본금 150억 원의 부동산개발회사 실무 이사로 복합도시개발사업, 건설회사 M&A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기도 했죠.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제법 남들이 부동산전문변호사로 대접해 주는데, 제 스스로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연구하고 경험해 볼수록 어렵고 두려워지는 것이 부동산분야입니다. 작년에 경매분야 연구의 결과물인 ‘경매법테크’란 책을 매일경제출판사에서 펴냈고, 올해는 ‘부동산개발’ 관련 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무실에 30평의 강의실을 마련해 4월부터는 고급경매강좌도 시작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부동산이지만 이번만은 확실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5년 전 20년 후 자산 100조원의 다국적 부동산투자회사를 꿈꾸며 시도했다가 비록 실패했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와 경험을 축적해 다시 한 번 그 출발점에 서보고 싶습니다.” ◆고향은 혈연과 같은 것! 꿈을 향해 멈추지 않는 그는 ‘향수’란 노래를 유별나게 좋아한다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란 노랫말처럼 삼성산 자락 고향집에서 바라보던 들판의 풍경은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불쑥불쑥 떠올라 가슴 아린 향수를 자극하곤 한다. 고교시절 사정동으로 이사해 3년 가까이 남천 가에 살며 여름밤엔 남천에서 멱 감고, 성암산에 산책 갔던 기억들, 2년을 콩나물시루 같았던 1번 버스를 타고 1시간씩이나 통학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고. 고향의 쓰레기매립장반대운동과 소송 때는 데모로 구속된 분들의 변호를 맡아 풀려나게 할 수 있어서 기뻤고, 쓰레기매립장설치처분취소소송 1심과 고등법원에서 승소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한 사건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전체 시민들을 위해선 바람직한 사업이었지만 고향 주민들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요즘 고향을 다녀올 때마다 나날이 바뀌어가는 경산시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경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비록 고향을 떠나 살고 있지만, 한농연 경산시지부, (재)경북테크노파크의 법률고문을 맡고 있고, 고향은 혈연과 같은 것이어서 절대 버릴 수 없습니다. 내 꿈이 있다면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고향을 위해 뜻 깊은 사업을 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출처] 2008 '월간 경산사랑' 이 기사는 2008년 월간경산사랑에 소개 된 내용입니다. 월간경산사랑은 웹플러스뉴스의 전신입니다. 인터넷 웹플러스뉴스는 [인물&이사람] 코너를 새롭게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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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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