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석 국회의원

정부가 33조원의 대규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7월 23일 처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코로나로 인한 국민적 희생을 다소나마 보상하기 위함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금 살포에 대한 부담감과 아울러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견해도 많다.

이번 추경이 국가재정법의 추경 요건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다. 국가재정법은 1.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발생, 2.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3.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하여야 하는 지출 등 엄격하게 세 가지 경우로 추경 요건을 한정하고 있다.

작년부터 진행 중인 코로나를 금년에 발생한 재해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행과 IMF 등의 성장률 전망치 상향조정, 소위 ‘초과 세수’가 추경 재원이라는 정부 홍보를 고려할 때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우려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3호의 법령에 따른 지급 의무 발생이 근접한 추경 요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령상 의무는 손실보상법에 따른 소상공인 손실보상금(0.6조원)과 희망 회복자금(3.3조원) 등 4조원 안팎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코로나로 소상공인·서민이 죽을 지경이니 지원이 시급하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그러나 국민은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사기 진작 차원에서 위로금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는 2월19일 문 대통령의 언급이 추경의 시초임을 기억하고 있다. 집권자의 선한 의도 강조 취지이겠지만, 법령에 따른 행정과 정책 시행 책임을 진 공직자들의 법치주의 무시 행태는 매우 우려스럽다. 권력도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추경 재원이라는 소위 ‘초과세수’는 허구이다. 금년도 세수 증가는 일부 경기 회복 요인 외에 지난해 극심했던 세수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와 유예분의 납부, 부동산 과열로 인한 양도세 수입증가에 의한 착시효과라는 것이 언론과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00년 이후 세입 전망과 실적의 괴리가 가장 컸던 해(年) 1~3위 모두 문 정부 집권 시기이다. 특히 경제회복을 예상하고도 금년 국세 수입을 전년보다 적게 전망한 것은 명백한 세입 전망 실패이다.

엉터리 추계 결과를 갖고 초과 세수를 돌려준다며 혹세무민하는 것은 국민 기망이다. 세수 추계역량 급락 원인 진단과 세수 추계 정합성 제고 대책이 시급하다.

금년 적자국채는 본예산(93.5조원)과 1차 추경(10조원) 합쳐 103조원을 넘는다. 겨우 2조원의 국채상환은 더 걷힌 국세 수입으로 국채를 우선 상환토록 한 국가재정법 제90조의 정신을 대놓고 무시했다는 비판이다. 빚잔치로 미래세대 가불하지 말고 소위 초과 세수는 국채를 대폭 상환해야 마땅하다.

적절한 추경 사업 찾기가 어렵다. 

정부는 8월말~9월초 코로나 진정을 기대하며 재난지원금과 소비 쿠폰을 강행할 태세다. 단기 알바성 일자리 사업 등 추경 때마다 등장하는 반복 추경 사업도 많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이나 각종 이전소득은 부가가치 창출이 아니므로 경제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거리 두기 4단계 상황에서 소비 쿠폰 발행, 백신이 없는 내수 활성화 과욕은 전염병 극복과 경제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고 결국 통화 소득을 추구하는 것 아닌지 의심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부재정을 空돈이라고 착각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시정해야 한다.

재정 안정화에 대한 책임 의식과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IMF는 우리나라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의 2019년말 대비 2026년 증가 규모를 3위로 전망했다. 재정 악화 원인이 일시적 세입감소와 일시적 세출증가인 다른 나라는 코로나 극복 후 국가채무비율이 안정되지만, 우리나라는 주로 복지제도 확대에 기인하여 코로나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재정 악화가 지속하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위기 때 빚 추경을 하더라도 정상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국가채무비율은 40%”라던 과거 입장을 번복하며 “40%의 근거가 뭐냐?”고 공무원을 질책한 후 재정을 헐어 쓰는데 둑이 무너졌다.

국가채무비율이 외국보다 양호하다는 구호 하나만으로 빚잔치를 정당화하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할 수는 없다. 고령사회 도달 시 우리나라(2017년) 국가채무비율은 36.0%로 20% 내외였던 프랑스 독일보다 높다.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재정건전화법 제정이 시급한 사유이다.

전문기관들도 재정 상황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KDI는 재정건전화 방향으로 전환 중인 외국과 달리 한국은 재정확장으로 대규모 재정 적자가 지속될 것을 우려하며, 공기업 정원(2만3천여명) 및 부채 규모(25.1조원)가 급증하여 공기업 부채 비율이 OECD 2위인 점도 지적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달러·유로를 사용하는 기축통화국(20개국 평균 83.5%)을 제외한 비기축통화국(17개국 평균 44.8%) 중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OECD 상위권이며 급속한 채무 증가로 이자 비용 급증 및 성장 여력 감소를 우려했다. 무디스도“부채가 더 악화한다면 신용등급에 부정적”이라며 중기적 재정 건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정 문제가 경제문제로, 또 국가 존립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본예산에 성공하지 못해 추경에 매달리는 임시정부인가? 김대중 정부 이후 매년 추경을 한 정부는 문 정부가 유일하다. 2000년 이후 총 20번의 추경 중 8번이 文 정부에서 이루어졌고, 이번이 무려 9번째 추경이다. 추경중독이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정부의 경제재정 전망 시스템이 망가진 것인지 걱정이다. 양치기 소년의 3번째 “늑대가 나타났다.” 외침에 마을 사람들 아무도 나오지 않았던 교훈을 잊은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 국가채무(D1)는 문 정부 이전인 2016년 말(626.9조원) 대비 340조 증가한 965.9조 원, GDP 대비 48.2%이다.

국민 일인당 약 2천만원, 4인 가구라면 8천만원 가량의 국가 빚을 떠안고 있다. 국가채무 천조 원 및 국가채무비율 50% 달성은 시간문제이다.

공공기관 부채와 연금 충당 부채만 더해도 이미 2천5백조원에 달한다는 지적도 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빚덩이에 된통 당하기 전에 재정 정상화를 위해 메스를 대야 한다. 양은 누가 돌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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